“개천절이라는 건국절이 있는데 또 무슨 건국절이 필요한가?”

최근 평소 알고 지내는 외국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건국절이 언제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불 때, 우리나라에는 개천절(10월3일)이라는 건국일이 분명 존재한다. 개천절을 영어로 ‘National Foundation Day of Korea’라고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도 개천절은 ‘우리나라의 건국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한 국경일’이라고 적혀 있다.

이렇듯 건국일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왜 한국인들은 사실상의 건국일인 개천절과는 전혀 관계없는 1919년 4월11일과 1948년 8월15일이 대한민국의 건국일이라고 서로 싸우고 있냐는 것이다.

그는 국가란 한 번 세워지면 그 국가에 속한 민족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 한 영원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국가의 이름은 중간 중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고조선, 신라, 고려,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등으로 말이다. 따라서 같은 민족인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건국일은 개천절이라며 소모적인 논란은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했다.

그의 지적대로 우리 사회는 매년 8·15 광복절만 되면 건국절 논란으로 시끄럽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1919년 4월11일을 건국일로 해야 한다는 쪽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민주공화제 정부 수립과 상해 임시정부 법통을 명시한 현행 헌법 전문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해야 한다는 쪽은 1919년에 건국이 되었다면, 당시의 정부를 임시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양쪽 다 나름 일리 있어 보인다.

국가라는 개념적 측면에서 볼 때,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의 건국일로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국제법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가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국민, 영토, 정부, 주권이다.

국민을 어떻게 정의하는 가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국민은 한 지역에 영구히 거주하며 같은 국적을 가진 인구를 말한다. 영토 역시 국가를 세우기 위해선 자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또 이러한 영토를 효율적이며 안정적으로 관리할 정부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함께, 자유롭게 타 국가와 외교를 수립할 수 있는 자주권이 있어야 한다.

1919년에 중국 상해에 설립된 임시정부가 과연 국가 구성 조건을 충족했는가.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건국 선포는 글자 그대로 선언에 불과하다. 1919년 당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있던 우리 국민의 국적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영토 역시 일본에 귀속됐다. 비록 임시정부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형태를 지니고는 있었으나 자주권이 없어 타국들로부터 국가로 인정을 받지 못해 자유롭게 외교를 수립할 수도 없었다. 즉 임시정부는 건국의 시작이나 모태로 볼 수는 있지만 국가 수립이라고 하기엔 국제법적으로 부족했다.

그러나 1948년 8월15일의 경우, 국민, 영토, 정부, 주권의 국가 구성 조건이 모두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패망으로 1945년 8월15일 광복이 되어 국민, 영토, 주권은 회복되었으나 정부는 없었다. 임시정부는 미군정이 인정하지 않아 해체됐다. 그러니까 3년 동안은 무정부 상태로 온전한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 견해 역시 완전한 해석이라 할 수 없다. 반론의 여지도 있어 보인다.

다만, 개천절이라는 건국절이 있는데 또 무슨 건국절이 있어야 하느냐며 논쟁을 끝내라는 외국인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정답 찾기가 쉽지 않은 데다 건국절 논쟁 자체가 여러 문제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국민적 합의 재도출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정부 수립 당시 국가의 기원을 고조선 건국일로 지정해버린 상태에서, 건국일을 새로 지정해야 한다면 국가의 기원이 단군 조선이 아님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또 대한민국이 신생국인지 아닌지도 합의해야 한다. 신생국이라 할 경우 기원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합의도 도출해야 한다. 이게 쉬운 일인가.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과 갈등만 일으킬 건국절 논쟁은 그래서 그만 해야 한다.

장성훈 국장  seantlc@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