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면 신사의 나라, 일본 하면 사무라이(무사)의 나라를 연상하게 되는 것처럼 한국 하면 떠오르는 국가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효 사상,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정신, 인본주의 전통, 개방성 등 ‘코리안 드림’을 만들 수 있는 빛나는 문화유산과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류 자산을 많이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도경제성장과 민주화 달성이라는 ‘두 번의 기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서구 선진국을 따라잡았다고 말할 수 없다. 선진국 수준의 국가에는 그 나라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최고의 상품이 되어 국가경쟁력의 또 다른 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인들에게 한국이 어떤 나라로 인식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한국인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정의하면 좋을까.

미국 하버드대의 고(故) 라이샤워 교수는 “한국은 생명력은 넘쳐흐르지만 거칠다.”고 평가했으며 “한국적 야성(野性)을 이상적으로 승화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주류세력이 ‘무사도’를 일본의 가치관으로 승계한 데 비해, 우리는 광복 후 서구사상의 무분별한 수용으로 선비정신이 국민의 가치관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선비정신은 일제에 의해 분열적 논쟁으로 폄하되고, 이후 낡은 것이라고 천대 받아 팽개쳐 버려진 상태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높이고 한류를 확산시키기 위해 선비정신과 같은 정신재무장운동이 필요하다.

선비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 신채호 선생은 선의 무리 즉 ‘선배(仙輩)’라고 했고, 김동욱 선생은 선배(先輩)와 같은 개념으로 신라의 화랑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주장했다. ‘선비 논 데서 용 난다’는 속담에서 볼 수 있듯이 선비는 학식과 예절로 명분과 의리를 지키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추구하였으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와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정신력을 소유했다.

선비정신의 대표적 덕목으로는 사보다 공을 앞세우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청빈과 검약을 생활철학으로 삼는 ‘청빈검약(淸貧儉約)’,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후하게 대하는 ‘박기후인(薄己厚人)’, 근심할 일은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즐길 일은 남보다 나중에 즐기는 ‘선우후락(先憂後樂)’,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주는 ‘억강부약(抑强扶弱)’ 등을 들 수 있다.

영국이 지난 300년 동안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것은 상류 지도층이 먼저 전쟁에 나가서 전사하고 희생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구한 500여 년 동안 조선을 지탱해온 정신은 선비정신이었고, 그것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이 조선되게 하여온 자가 화랑이며, 그러므로 화랑의 역사를 모르고 한국의 역사를 말하려는 것은 골을 빼고 그 사람의 정신을 찾음과 한가지인 우책(愚策)이다”고 갈파한 바 있다.

화랑정신, 선비정신, 호국정신, 새마을정신을 ‘경북 4대정신’이라 부른다. 이런 문화 자산은 한국과 세계의 미래를 건강하게 열어나갈 열쇠가 될 수 있다. 경북을 본거지로 하는 선비정신은 반드시 되살려야 할 문화자산이며, 우리 국민 전체 삶의 좌표로 삼을 만한 가치이며,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류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선비정신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덕목으로 미국의 청교도정신, 영국의 기사도, 일본의 무사도에 비견할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선비정신을 내세우면 어떨까. 조선이 일본은 물론 사회주의로 변한 중국보다도 성리학을 잘 계승했기 때문이다.

이제 지도층부터 한국인의 인의예지(仁義禮智) 윤리와 홍익정신의 핵심인 선비정신을 해외에 소개하고 한국을 홍보하자. 국내에는 ‘선비정신’ 붐이 새로운 시민의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 그러면 우리의 국격(國格)도 저절로 상승하고 ‘관광 코리아’도 활성화될 것이다. K팝을 위시한 한류가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있지만 이를 실효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역사·문화의 고급 이미지가 뒤따라야 한다. 이것이 버려진 선비정신의 복원이 시급한 이유이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라는 책에서 "1960년대 이후 한국이 이룩한 기적적인 성장의 경우, 그 배후에는 수천 년 지속해온 지적 전통이 있다.... 한국인은 한국의 과거를 소개하지 않고는 국제 사회에 한국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없다. 한국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 한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참뜻을 음미해 보자.

우종철 자하문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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